새 계명


새로운 입찰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새 계명이 시행되는 것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영광을 받으시고 성령을 보내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요 13:33)는 육신이 이 땅에 있는 기간을 말합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영광을 받고 있는 줄 아시고 인자에게 영광을 돌릴 때가 가까운 줄 아시고(요 13:31-32)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며 이르시되 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새 계명은 주께서 우리를 들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가 영광의 주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없이는 꿈조차 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요 16: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아무도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의 주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가 대표이다(행 2:16-21) 요한복음 14-16장은 고별설교와 주의 유언이니 유언자는 유언자가 죽은 후에 한다.

내주하는 진리의 영에 의해 내 계명을 지키고 나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를 받아들이고 표현하겠다는 주님의 약속(요 14:21)이 성취됩니다.

여러분은 곧 새 계명이 역사하는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새 계명 없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 부끄럽고 죽을 만큼 부끄러울 것입니다.

구멍가게 주인은 100원이든 10,000원이든 손님을 맞이하지만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는 인간미와 호불호가 있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없는 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룟 유다를 탓하고 부지불식간에 그를 따라갑니다.

그들은 기독교 상인이 됩니다.

말세에 반신반인 음녀교회는 바벨론이라는 큰 상선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 사람의 영혼이 있습니다.

(계 18:13) 사고파는 것이 사람의 기본 생계이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없으면 장사를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께 문을 닫고 서로 주고 받는 믿음의 잔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기를 원합니다.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을 수 있어야만 회개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로 문을 여신(계 3:7-13) 교회입니다.

성령님 하늘 문이 열립니다.

다윗처럼 (행 2:25-35)

밖에 성령이 나타나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육체로 오신 말씀(요 1:1) 예수만 믿으며 십자가를 건너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자입니다.

죄와 상관없는 곳을 보았다.

. 그래서 시끄럽고 목숨을 걸고 난리를 피운다.

사람들은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쓴 베드로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감히 말한 베드로를 더 좋아합니다.

지금도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요 13:37)?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배워 자유케 하는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라(고후 3:17-18) 새 계명 곧 언약은 주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도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영광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영광입니까?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입니까? 3초 안에 답장을 해보세요.